사색과 기억 예술과 인생에 대하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지음 | 김윤미 옮김
음악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사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들려주는 예술과 인생!
“청중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있다. 하지만 어중간한 영혼은 없다. 다시 말해 청중은 재깍 흡수되지도 않고 굉장하게 압도하지도 않는 예술에는 이해심과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_ R.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의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의 부친이 연주하는 호른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지며 뷜로의 리허설 현장에 있어 보고 싶어진다.” _ ‘옮긴이의 말’에서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
“빰- 빰- 빰~ 쿵쾅 쿵쾅 쿵쾅” 찬란한 금관에 이어 장엄한 타악이 뒤따른다. 달 너머 지구가, 태양이 떠오른다. 곧이어 초기 인류가 등장하여 도구를 집어 든다. 역사의 시작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첫 장면이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명장면에서 되풀이하여 흐르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니체의 주제를 따라 작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의 들머리이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교향곡, 교향시, 오페라, 실내악, 가곡 등 서양 고전음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걸작을 남긴 거장이다. 뮌헨의 자랑이었던 명 호른 연주자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여섯 살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작곡하여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음악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뮌헨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예술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슈트라우스가 남긴 글을 모아놓은 에세이로, 그의 예술관과 인생 이야기뿐만 아니라 출판을 고려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과 회고, 서신 등도 포함되었다.
목차
총서 《음악》을 위한 서문 (1903)
음악에 진보파라는 게 있는가? (1907)
레오폴트 슈미트의 《현재의 음악계》를 위한 머리말 (1908)
어느 시장님께 띄우는 공개 서한 (1913)
도시 연합 극장: 하나의 제언 (1914)
오페라 공연 목록에 관한 생각 (1922)
열 개의 황금률 (1925경)
작곡과 지휘에 관하여 (1929)
한스 디스텔의 《어느 오케스트라 단원이 지휘에 관하여》에 부치는 서문 (1931)
고전 걸작들을 지휘한 경험
예술적 유언: 카를 뵘 박사에게 (1945)
바이로이트의 〈탄호이저〉에 관하여 (1892)
〈파르지팔〉 저작권 보호 문제에 관하여 (1912)
리하르트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 대하여 (1940경)
바그너의 《오페라와 드라마》에 관하여 (1940경 추정)
모차르트의 〈여자들은 다 그래〉 (1910)
모차르트에 대하여 (1944)
모차르트라는 챕터에 관하여 (1944)
슈베르트에 대하여 (연도 미상)
구스타프 말러 (1910)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하여 (1925)
프리드리히 뢰슈 추도사 (1925)
뮌헨 오페라 (1928)
빈 필하모닉 경축사 (1942)
작센 슈타츠카펠레 경축사 (1948)
음악 교육을 위한 시의적 단평: 한 교육자 친구에게 (1933)
인문 김나지움에 관한 편지: 리이징거 교수께 (1945)
〈요셉의 전설〉에 관하여 (1941)
〈간주곡〉에 부친 미출간 서문 (1924)
〈간주곡〉 서문 (1924)
〈이집트의 헬레나〉에 관한 인터뷰 (1928)
〈기상곡〉을 위한 머리말 (1942)
내 작품들의 좋은 조합 (1941)
선율 착상에 관하여 (1940경)
오페라 〈다나에의 사랑〉 최종 리허설에 대하여 (1944)
요제프 그레고어의 《연극의 세계사》에 관한 고찰 (1945)
마지막 메모 (1949)
한스 폰 뷜로에 대한 기억 (1909)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내 어린 시절과 수련 시절
내 오페라의 첫 공연들에 대한 기억 (1942)
파울리네 슈트라우스-데 아나 (1947)
여든다섯 살 생일에 가르미슈에서 드리는 말씀 (1949)